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과 천명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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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10-14 02:0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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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완성된 것은 아마도 1553년 겨울일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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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계와 추만이 처음 만난 것은 계축년(1553) 가을이었다. 퇴계와 추만이 그것을 다시 교정하여 완전히 요점함으로써 천명도설은 새롭게 완성되었다. 1554년 1월 1일은 추만이 「천명도설서」를 쓴 날짜이므로, 천명도 및 도설은 그 이전에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. 이 때 퇴계와 추만은 천명도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... , 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과 천명도기타레포트 ,
다. 추만과 퇴계가 처음 만난 것이 1553년 가을이었고, 몇 달 뒤에 추만이 수정된 천명도를 퇴계에게 보여주자 그것을…(To be continued )
(3) 퇴계가 정정한 천명도퇴계와 추만이 처음 만난 것은 계축년(1553) 가을이었다. 이 때 퇴계와 추만은 천명도설에 대해 意見을 교환했고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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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) 퇴계가 정정한 천명도
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과 천명도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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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3) 퇴계가 정정한 천명도
퇴계와 추만이 처음 만난 것은 계축년(1553) 가을이었다. 그러므로 「천명도」 및 「천명도설」이 완성된 것은 계축년 겨울이었고, 여기에 「후서」와 「서」를 갖춘 『천명도설』이 완성된 것은 갑인년 1월 1일인 셈이다. 이 때가 갑인년(1554) 1월 1일이었다. 『퇴계전서』 2, 「천명도설후서」, 321쪽. 이어서 12월 어느날 퇴계는 「천명도설후서」를 지어 추만에게 주었고, 그것을 받은 추만은 「천명도설서」를 지었다. 이 때 퇴계와 추만은 천명도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,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추만은 고친 도와 설을 가지고 와서 퇴계에게 보여주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