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읽고쓰기
페이지 정보
작성일 23-05-09 17:41
본문
Download : 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.hwp
1·2학년 때까지 가정교사 하느라 학교 공부만 따라가기 바빴던 신영복은 5·16이 일어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후배들의 세미나 지도를 처음 하는 등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된다된다. 그래도 전쟁의 기억은 끔찍했다. 교육방법 및 교육工學(공학) 수업에서 선생님이 과제課題로 내주신 책을 빌려서 한참을 가지고 읽으면서 나는 크게 감흥을 받지 않았다. 다섯 살 꼬마 신영복의 머리에도 해방의 그날은 기억이 또렷하다.
Download : 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.hwp( 93 )
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읽고쓰기
그렇다면, 신영복은 누구인가?
레포트 > 인문,어학계열
![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-2013_01.jpg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1408/%5B%EC%84%9C%ED%8F%89%5D%20%EC%8B%A0%EC%98%81%EB%B3%B5%EC%9D%98%20%EA%B0%90%EC%98%A5%EC%9C%BC%EB%A1%9C%EB%B6%80%ED%84%B0%EC%9D%98%20%EC%82%AC%EC%83%89-2013_01.jpg)
![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-2013_02_.jpg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1408/%5B%EC%84%9C%ED%8F%89%5D%20%EC%8B%A0%EC%98%81%EB%B3%B5%EC%9D%98%20%EA%B0%90%EC%98%A5%EC%9C%BC%EB%A1%9C%EB%B6%80%ED%84%B0%EC%9D%98%20%EC%82%AC%EC%83%89-2013_02_.jpg)
![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-2013_03_.jpg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1408/%5B%EC%84%9C%ED%8F%89%5D%20%EC%8B%A0%EC%98%81%EB%B3%B5%EC%9D%98%20%EA%B0%90%EC%98%A5%EC%9C%BC%EB%A1%9C%EB%B6%80%ED%84%B0%EC%9D%98%20%EC%82%AC%EC%83%89-2013_03_.jpg)
![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-2013_04_.jpg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1408/%5B%EC%84%9C%ED%8F%89%5D%20%EC%8B%A0%EC%98%81%EB%B3%B5%EC%9D%98%20%EA%B0%90%EC%98%A5%EC%9C%BC%EB%A1%9C%EB%B6%80%ED%84%B0%EC%9D%98%20%EC%82%AC%EC%83%89-2013_04_.jpg)
![[서평]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-2013_05_.jpg](https://sales.happyreport.co.kr/prev/201408/%5B%EC%84%9C%ED%8F%89%5D%20%EC%8B%A0%EC%98%81%EB%B3%B5%EC%9D%98%20%EA%B0%90%EC%98%A5%EC%9C%BC%EB%A1%9C%EB%B6%80%ED%84%B0%EC%9D%98%20%EC%82%AC%EC%83%89-2013_05_.jpg)
서평,신영복,감옥으로부터의 사색
신영복 <감옥으로부터의 사색>을 앞에 두고 나는 그저 의무감으로 눈으로 활자를 찍어 넣고 있었다.
순서
밀양군 교육감이 되신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, 그는 자형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부산상고로 진학하게 되었다. 그리고 5·16이 왔다. 억울하게 20여년의 감옥생활을 한 사람의 감옥에서의 편지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, 신영복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, 그 억울한 감옥 생활 - 통일 혁명당 사건과 시대적인 암울 - 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다. 그러나 밀양은 인민군 수중에 들어가지 않아 ‘인공’ 치하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.
신영복은 1941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.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신영복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.
신영복 <감옥으로부터의 사색>을 앞에 두고 나는 그저 의무감으로 눈으로 활자를 찍어 넣고 있었다.
설명
다.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신영복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. 상대 학생들로 조직된 경우회, CCC란 종교단체 산하의 경제복지회, 정읍 출신들이 모인 동학연구회 등 나중에 통혁당 사건 때 연루된 동아리들 외에도, 고려대·연세대의 학생 동아리 세미나에도 자주 가서 지도했는데, 이런 모임이 예닐곱 개가 되다 보니, 각각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있어도 매일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. 물론 책을 다 읽고, 책을 쓴 사람이 영적으로 맑고 투명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부분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지만 책을 온전하게 느끼기에는 부족했다. 물론 책을 다 읽고쓰기, 책을 쓴 사람이 영적으로 맑고 투명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부분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지만 책을 온전하게 느끼기에는 부족했다. 아버지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경상북도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, 일본인 교장의 조선 학생 discrimination에 항의하다가 파면됐다. 교육방법 및 교육공학 수업에서 선생님이 과제로 내주신 책을 빌려서 한참을 가지고 읽으면서 나는 크게 감흥을 받지 않았다. 고향은 밀양이지만, 출생지는 의령이었다. 3학년 이후, 거의 매일같이 세미나의 연속이었다. 억울하게 20여년의 감옥생활을 한 사람의 감옥에서의 편지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, 신영복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, 그 억울한 감옥 생활 - 통일 혁명당 사건과 시대적인 암울 - 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다.
대학에 들어간 지 꼭 1년 만에 4·19가 일어났다. 전쟁은 그가 열 살 때 터졌다. 시인으로 5·16 군사반란 뒤 교원노조 운동으로 구속된 살뫼 김태홍 선생이 당시 국어 선생님이었는데, 그분의 권유로 한국은행 면접시험 대신 서울상대에 시험을 쳐 합격한 것이 1959년이었다.